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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내 타래 읽어보다가 인외존재인 윤과 인간 홍의 러브스토리가 보고십어졋어 (제가 써야겠죠 알겠습니다)



인간이 되고싶어하는 인외존재 뭐 있지.. 구미호밖에 떠오르는 게 없는데 아무튼 백 년 묵은 여우가 인간들 사이에 섞여 지내는 거지 설화처럼 사람 간을 파먹는 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얻어서 그 사람이 죽을 때 소원으로 말하게 하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자


윤보다 윤의 동생이 먼저 인간이 되었다 어린 여우는 노부부의 눈에 띄어 양녀가 되었고 한없이 예쁨받다 마침내 인간으로서 삶을 재시작하게 되었겠지.. 그분들이 널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았냐는 오빠의 물음에 코웃음을 치며 제 딸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담 했던 예쁜 동생


인간의 삶은 짧았고 동생이 짧은 생을 마감하도록 윤은 아직도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인간으로 나지 않은 그에겐 마음을 얻긴커녕 마주보고 이해할 만한 깜냥조차 없었기 때문에


중년 여성의 장례식에 모르는 사람처럼 참석하고 돌아온 윤은 검은 옷차림 그대로 놀이터 한켠의 벤치에 앉았다 녹지 못한 눈이 쓰레기들과 뒤섞여 눈에 띄지 않는 곳마다 들어차 있었다 백 년을 넘게 살았어도 스물 남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윤은 그것들이 저 같다고 느꼈다


차라리 여우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접었다 윤은 자신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음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윤은 인간이 꺼림칙했다 말이 사회적 생물이지 앞에선 웃어도 뒤에선 어찌 하는지 모를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이 죽고 윤은 가출 청소년 시설로 들어갔다 앳된 외모 덕분이었다 그 곳에 홍이 있었다 시설에 익숙한 것 같았다 봉사자들은 홍을 두고 자주 온다, 고 했었다 윤이 시설에 머무는 한 달 동안 홍은 세 번이나 시설을 들락거렸다


홍이 세 번째로 시설에 들어온 날 윤은 공동 거실로 나갔다가 커튼 자락을 붙들고 작고 가느다란 달을 한없이 쏘아보는 홍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달빛을 반사하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아름다운 빛을 내는 눈이라니




윤은 홍이 더 알고 싶어졌다 그 밤 그 새벽에 초승달을 노려보던 눈과 고집 센 콧대 둥근 입술 긴 목과 가끔의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던 목소리 그건 다 뭐였는지 그게 다 뭐인 건지 그리고 그 애는 왜 자꾸 시설에 들어와서 하루 만에 나가는지


홍은 보름만에 시설로 돌아왔다 이번엔 텀이 긴 편이었다 윤은 내내 홍을 쫓아다녔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밤이 되었다 해가 뜨면 홍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시설을 또 떠나게 될 거였다 밤이 깊도록 윤은 뒤척거리다 어깨를 흔드는 손에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야, 잠깐 나와 봐 홍이었다




윤은 부드럽지만 차가웠고 홍은 반짝이지만 어두웠다 두 모순덩어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밤새 이야길 나누다가 소파에 기대 나란히 잠들었다 아침 일찍 부산스러운 분위기에 깨서 윤은 아르바이트엘 갔고 홍은 부모님께로 돌아갔다 너 갈 데 없댔지, 하고 예쁜 눈꼬리를 야살스레 휘며 홍이 웃었다 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홍은 더 이상 가출 청소년 수용시설에 기어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윤이 홍의 집으로 들어갔다 홍의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너에게 많이 의지를 한다더구나, 하고 한짐 덜어낸 표정으로 윤을 바라보았고 홍의 어머니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애써 감췄다 어쨌든 윤은 천애고아였다


윤은 이제 홍과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학교엘 갔다가 같은 집으로 돌아와서 같은 방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윤의 방으로 정해진 곳은 따로 있었으나 홍은 윤이 제 방에서 지내길 원했다 그래서 윤의 방에 가구라곤 침대와 옷장과 책상뿐 늘지를 않았다


윤은 제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 건 다만 애정이 없기 때문이라는 동생의 말을 이제서야 알았다 윤은 홍이 눈썹만 늘어뜨려도 한숨 한 번만 쉬어도 무슨 일인지 어떻게 하면 달래지는지 다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사랑이었다


안 그래도 짧은 인간의 생이 하루하루 없어지는 게 아깝고 안타까워 윤은 매일 밤 홍을 꼭 껴안고 잠들었다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건 홍도 마찬가지였다 사슴처럼 우아하고 순하게 웃는 홍은 오로지 윤 앞에서만 존재했다 윤이 주유소에서 일했던 걸로 비아냥대던 놈은 어린 나이에 의치 신세가 됐다


홍은 윤이 무슨 말을 하건 따랐다 툭하면 말썽을 피우던 금수저를 온순하게 길들인 윤에겐 가끔 어려운 명령이 떨어졌다 예를 들자면 가족 모임에 홍을 출석하게 하는 것


홍은 제 핏줄들을 마구 비난하면서도 윤이 입혀 주는 대로 입고 모임엘 갔다 다녀왔는데 이 방에 네가 없다면 난 창문 열고 뛰어내릴 거야 무서운 말을 남긴 채였다


그러나 홍이 돌아왔을 때 윤은 방 안에 없었다 홍은 말없이 화장실 문을 열어보고 윤의 방문을 옷장 문을 열어보고 마지막으로 책상 아래를 들여다본 뒤 커프스 단추조차 풀지 않고 창문을 열었다 그 때 베개와 이불 틈새에서 무언가 휙 뛰쳐나와 홍의 소맷자락을 물었다


창틀로 기어오르려던 홍의 팔에 매달린 건 붉은 색 여우였다 귀 뒤편과 네 다리와 꼬리 끝이 까맣고 몸이 날씬한 여우가 가볍게 홍의 팔 위로 뛰어올라 어깨 위로 머리를 기댔다 그건 윤의 습관이었다 홍은 윤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 보았다 여우가 고개를 들었고 홍은 창문을 닫았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 생겨난 둘 사이의 비밀이 마음의 작은 틈마저 메웠다 가끔 홍은 내 간이 필요해? 하며 웃었고 윤은 내 것도 너 줄 거야, 하고 간단히 답했다 그뿐이었다






쓰고 싶었던 건 그냥 대화였는데.. 윤 - 넌 언제쯤 철 들래? 홍 - 넌 언제쯤 인간이 될 거야? 윤 - 너 죽은 다음 날. 홍 - 그 날 인간 되면 제일 먼저 뭐 할 거야? 윤 -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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