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눈이나 서리, 하다못해 진눈깨비조차도 아주 늦은 가을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하릴없이 부쩍 차가워진 계곡물 위로 작은 눈송이 하나를 떨어뜨려 녹이기를 반복하는 승철의 무릎 위로 반딧불이처럼 작은 빛이 살금살금 올라앉았다. 관심을 끌려는 듯 빙글빙글 몇 번 돌며 존재감을 알린 빛이 이내 형태를 갖추어 승철의 품에 폭 안겼다. 곱슬거리는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승철의 뺨에 부비며 한솔이 응석받이 어린애처럼 늘어지는 목소리로 칭얼거렸다. "나 보고싶었지이-""어. 완전.""그런데 왜 이렇게 반응이 싱거워?""…한솔아, 우리 몇 시에 만나기로 했었지?""정오에….""지금이 정오야?"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군 한솔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정령에게 인간의 시간이 별 의미가 없다 해도 여름에 제가 ..
도토리 줍는 꼬꼬마 솔이를 생각하자.. 데굴데굴 도토리 한움큼 주워서 바지주머니에 넣고 후드티 캥거루주머니에 넣고 모자에 넣고 손에 쥐고 집에 와서 밍규한테 너 먹지도 못하는 걸 왜 주워왔냐 손이랑 옷은 이게 다 뭐냐고 혼나서 풀죽은 솔이.. 옷의 모든 주머니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도토리.. 여기에다 투덜거리면서 솔이 손이랑 얼굴 씻겨 주고 도토리도 가지고 놀 수 있게 잘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주는 밍규 추가하면 완벽하겠죠.. 도토리로 구슬치기 하는 솔람쥐와 툴툴거리면서 솔이 옷 빨아서 널어주는 밍.... 정말 한 권의 동화책 아닌지 (몽쉘님) 존나 귀여워서 진짜 방금 베개때렸어요 ㅠㅠㅠㅠ 도토리 씻어주는 밍규도 넘 귀엽구 구슬치기하는 솔람쥐도 넘 사랑스럽구 (솔람쥐 애칭 득템해갑니다) 나중에 빨래 끝나고..
부승관은 인내심이 강하거나 느긋한 편은 결코 아니었다. 본인도 그쯤은 알고 있었기에 승관은 매사에 쭈뼛거리기나 하는 답답한 석민을 타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늘 약간씩 미안한 마음을 남겨두곤 했다. 물론, 그 상황이 지난 뒤의 일이지만. "저기, 승관아.""왜?""…아무것도 아니야.""뭐.""날씨 되게 좋다 그치.""형 너는 날씨가 좋단 말이 뭔지 모르냐 혹시?" 아닌게아니라 미세먼지 경보가 어쩌구, 하며 며칠씩이나 뉴스에서 시끄러웠다. 해가 쨍할 시간이고 날씨도 꽤나 건조한데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을 만큼 하늘이 뿌연 터라 걷기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카페로 들어온 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커피에 꽂힌 빨대만 죽죽 빨아올리고 있으니 승관으로서는 열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시던 ..
0. 이석민. 예전엔 도겸이라고도 불렸던 것 같다.직업은 보스의 애인. 그 전 직업은 잘 나가는 선수집 호스트. 1. 처음 본 날까지 기억하지는 않는다. 마주칠 일이 꽤 많았고, 보스가 시키는 만큼만은 곁을 지켜야 했다. 큰 싸움이 될 것 같은 날이면 보스는 가장 번화한 시내의 큰 호텔 중 가장 화려한 방에 그를 가두고 내가 그 침대 곁을 지키게 했다. 그런 날마다 이석민은 조금 훌쩍거리다가, 여러 번 한숨을 쉬고 얕게 잠들었다. 내가 꼬고 있던 다리를 반대편으로 바꿀 때 가죽 소파와 옷자락이 마찰되는 소리만으로도 파드득 일어날 만큼 가벼운 잠이었기 때문에 나는 종종 푹신한 카펫 위에 그냥 주저앉은 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잠든 이석민의 얼굴을 지켜보고는 했다. 그렇게 예민한 잠 속에서도 이석민은 종..
복붙이 너무 꼬질꼬질해 보여서 재편집한 썰 (내용은 같습니다) 승관이 수능 끝난 겨울 방학에 일본 갔을 때 만나는 거지 드럭스토어 들어갔다가 향수 진열장 앞에 서있던 한솔이 발견하고 무안단물 마신 사람처럼 소화불량과 피로와 감기까지 한방에 치유당해 버려라 헐 데박쎄박 일본에 혼혈 많다더니 이런 말로 표현 못할 미남을 다 보고.. 하고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는데 그 미남이 향수병들 보고 있던 눈을 들어 뿌야를 똑바로 쳐다보는 거지 그래서 속으로 아 젠장 욕한 줄 알았나봐 절대 아닌데 뭐라고 해명하지.. 하고 쫄아있는데 예상 외로 그냥 -저 일본 사람 아니고 한국인 관광객이에요. 하면서 웃어주는 거야 그리고 그날부터 시작되는 부승관의 얼빠 도전기 (라고 쓰고 스토커 도전기라고 읽는다) 아무튼 부솔은 그게 꼭 ..